예전 같으면 엄마한테 “그거 어디 걸려서 찢어졌냐?” 하면서 등짝 맞았을 디자인들이 지금은 가장 트렌디한 패션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멀쩡한 니트에 구멍을 뚫고 새 옷인데도 수년 동안 입은 듯 색을 바래게 만들고 일부러 원단 끝을 해지게 풀어놓습니다. 심지어 봉제선을 밖으로 드러내거나 옷 자체를 비대칭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디테일은 대부분 “관리 못한 옷” 혹은 “불량”처럼 여겨졌습니다. 패션에서 완성도란 결국 얼마나 깨끗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는가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마감은 정갈해야 했고 실루엣은 균형 잡혀야 했고 새 제품은 당연히 새 것처럼 보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가 꽤 많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하면 심심하게 느껴지고 약간 망가진 듯한 디테일이나 손으로 직접 만든 흔적들이 더 매력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거죠. 중요한 건 단순히 거칠어 보이는 게 아닌, '의도'입니다.
'실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계산된 디테일'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분위기가 생기는 옷들.
지금 패션은 오히려 그런 불완전함 안에서 더 강한 개성과 감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 자체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딱 떨어지고 지나치게 정돈된 스타일보다 자연스럽게 구겨져 있고 오래 입은 듯한 분위기. 새 것 같은 느낌보다 이미 자기 스타일과 생활감이 묻어 있는 듯한 무드.
빈티지 열풍도 결국 같은 흐름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단순히 “비싼 옷”보다 그 옷이 가진 분위기와 흔적에 더 반응하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이런 흐름을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브랜드 중 하나는 역시 BALENCIAGA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발렌시아가가 보여준 컬렉션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너무 새 것 같은 느낌을 최대한 지워버린다는 점입니다.
후드는 일부러 수년 동안 입은 것처럼 페이드 처리하고 데님은 과하게 찢거나 뜯어놓고 스니커 역시 오래 신어 닳아버린 듯한 질감을 강조합니다. 재밌는 건 이게 단순히 “빈티지 느낌”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발렌시아가는 아예 망가진 상태 자체를 하나의 럭셔리 무드처럼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뎀나 체제 이후 이런 흐름은 더 강해졌는데요. 기존 럭셔리 브랜드들이 보여주던 깨끗하고 정돈된 이미지 대신 현실적인 사용감과 피로감 그리고 스트릿 무드를 적극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발렌시아가 옷들을 보면 약간 지쳐 있고 닳아 있고 거칠어 보입니다. 근데 오히려 그 분위기 때문에 더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오죽하면 매장에 가서 새 제품을 직접 시착해보면서도 “이거 진짜 새 제품 맞나요?” 하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워싱과 디스트레스 디테일이 정말 집요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이런 흐름이 이제 럭셔리 하우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기능성 스포츠웨어와 러닝웨어까지 이런 무드를 적극적으로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브랜드로 SATISFY가 있죠.
원래 러닝웨어는 기능성과 효율 중심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가볍고 깔끔하고 공기 저항을 줄이는 방향이 기본이었죠. 근데 새티스파이는 거기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대표적인 게 MOTH EATEN 디테일입니다. 진짜 벌레 먹은 듯 구멍이 송송 뚫린 티셔츠들.
처음 보면 “이게 진짜 제품 맞나?” 싶을 정도인데 사실은 통기성과 무드를 동시에 노린 디자인입니다.
재밌는 건 새티스파이가 이런 디테일을 단순 장식처럼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브랜드 자체가 러닝을 단순 운동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처럼 접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품들을 보면 기능성 러닝웨어인데도 어딘가 록스타 같은 분위기와 펑크 무드가 섞여 있습니다. 땀 흘리고 달리고 구겨지고 닳아가는 과정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런 흐름은 최근 러닝씬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단순히 기록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스타일과 무드로 러닝을 즐기느냐 역시 중요해졌기 때문이죠.
그렇게 러닝웨어까지 번진 ‘의도된 불완전함’의 흐름은 스트릿씬으로 넘어오면 훨씬 더 과감해집니다. 브랜드 Thug Club이 대표적인 사례죠.
국내 브랜드인 떠그클럽의 디자인 역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깔끔한 스트릿 브랜드”와는 결이 다릅니다. 원단을 일부러 거칠게 마감하고 금속 장식을 과하게 쓰고 워싱도 굉장히 강하게 들어가고 있죠.
특히 제품들을 자세히 보면 원단 끝을 일부러 뜯긴 듯 표현하거나 오래 입은 듯한 질감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라면 숨기려 할 요소들을 오히려 전면으로 드러내는 획기적인 방식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면서 옷 자체가 굉장히 날것처럼 느껴집니다. 근데 바로 그 거친 에너지 때문에 반응이 오는 겁니다.
특히 해외 힙합씬과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면서 브랜드 인지도 역시 엄청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실제로 지금 글로벌 패션씬에서 한국 브랜드들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과감한 무드 때문입니다.
너무 안전하고 정돈된 방향 대신 확실한 캐릭터와 강한 인상을 밀어붙인다는 점. 떠그클럽은 그 흐름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브랜드 중 하나에 가깝습니다.
근데 흥미로운 건 불완전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꼭 이렇게 거칠고 강한 방향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 다른 국내 브랜드 JiyongKim 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불완전함을 풀어냅니다.
대표적인 게 Sun Bleached 기법입니다. 햇빛에 원단을 장시간 노출시켜 자연스럽게 색을 바래게 만드는 방식인데, 중요한 건 결과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같은 제품이어도 햇빛과 시간 그리고 환경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균일하게 찍어낸 제품이 아니라 자연이 개입한 흔적 자체를 디자인처럼 사용하는 셈이죠.
그래서 지용킴 제품들을 보면 굉장히 자연스럽고 묘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억지로 빈티지처럼 만든 느낌이 아니라 진짜 시간이 지나며 바랜 듯한 무드. 그런 자연스러운 불균형 때문에 글로벌 패션씬에서도 굉장히 강한 반응이 왔습니다. 최근 해외 편집샵들과 셀럽 착용이 빠르게 늘어난 이유도 결국 이 지점과 연결됩니다.
지금 시대 사람들은 완벽하게 찍어낸 제품보다 “이 제품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옷에 더 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패션 시스템 자체와 연결하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PROTOTYPES는 패션 산업 내부에서 남겨지는 샘플 의류와 데드스탁 그리고 미완성 상태의 제품들을 기반으로 작업합니다. 그래서 컬렉션 자체가 일반적인 럭셔리 브랜드처럼 완벽하게 정리된 느낌이 아닙니다.
원단이 어긋나 있거나 다른 옷의 흔적이 남아 있거나 심지어 제작 중간 단계처럼 보이는 디테일까지 그대로 드러냅니다. 근데 그게 단순히 러프한 감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 애초에 “완벽한 새 옷”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바라봅니다. 패션 산업은 끊임없이 새 옷을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샘플과 재고들이 버려집니다. 프로토타입스는 오히려 그 과정과 흔적 자체를 디자인의 일부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 브랜드 옷들은 완성품이라기보다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 미완성 같은 분위기가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더 새롭게 보이는 거죠.
흥미로운 건 지금 사람들이 이런 옷들에서 단순한 디자인 이상을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새 것 같은 상태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이미 자기 스타일이 묻어 있는 옷” 같은 분위기를 더 선호합니다. 그래서 최근 빈티지와 워시드 그리고 디스트레스 무드가 계속 강해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흐름은 단순히 패션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완벽하고 지나치게 정제된 것들보다 조금은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들에 더 끌리고 있습니다. SNS에서도 일부러 흐트러진 사진과 거친 질감의 콘텐츠들이 더 반응 오는 이유도 비슷한 흐름에 가깝죠.
결국 지금 패션은 완벽하게 정리된 옷보다 얼마나 강한 분위기와 태도를 보여주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해져 있고 조금 거칠고 조금 불균형하더라도 그 안에 확실한 캐릭터와 무드가 있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옷에 더 강하게 반응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디스트레스와 해체주의는 단순히 “망가진 옷”의 유행이 아니라 완벽함에 질린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취향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패션은 늘 변화해왔습니다. 지금은 해지고 바랜 디테일들이 가장 트렌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전혀 다른 무드와 스타일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게 되겠죠.
과연 디스트레스 이후의 패션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지, 그 다음 흐름 역시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이미지 출처: Editorialist, Reversible, Hypebeast, GATA Magazine, PROTOTYPES 공식 웹사이트, @luxuriousbymm, @myfacewheno_o, @aroundtheshoess, @lildenimjean, @thug_club, @h_lorenzo, @jiyongkim_official, @pittiuomo_official 공식 인스타그램
